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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래도 벌초는 해야되지 않겠니??

by 브랜뉴 2023. 9. 5.




바쁜 분들을 위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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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초는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오른손잡이 낫을 왼손으로 휘두르며 풀을 베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옆에서는 정확하게 나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여성분들이 서로 웃으며 즉석에서 만든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삶기 시작한다. 아직 오전 8시임에도 벌써 점심과 참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기억으로는 남자는 약 40명 정도, 여자는 약 20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벌초는 해야되지 않겠니??

     

     

    벌초의 시작

    아주 어릴 때부터 벌초를 따라다녔던 나는 아버지가 왜 나를 이렇게 어린 나이 때부터 데리고 벌초며 묘사를 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벌초에 참석한 사람들 중 나보다 어린 아이는 1~2명 정도밖에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할아버지와 삼촌뻘 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할배, 할매, 아재, 행님, 행수 등 서로를 정겹게 부르며 낫질과 인사를 번갈아가며 하는 모습들에서

     

    '아.. 이게 집안에서 가장 큰 행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니가 보자... 그....그...행배 막내아들이가??? 둘째가??"라고 하는 모습들에서 첫째가 아니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어르신들과 둘째 이하는 벌초에 매년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0대 때에도 마찬가지로 매년 벌초를 따라다녔다. 이제는 모든 어르신들이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어디 사는지 알게 될 정도가 되었다.

     

    나도 이제 으른(?)으로서 당당히 저 할아버지와 같은 식사테이블에 앉아서 집안 대소사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직 내게는 아무런 발언권도 없고 막걸리를 고개 돌리고 마셔야 하며, 어른들이 밥상에 앉기 전까지는 근처에서 드리번 거려야 하는 입지인 것이다. 종손이지만 나이가 어리니..

     

    20대가 되어서도 난 벌초를 나오고 있다. 달라진 건 아버지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늘 여기서 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매년..

     

    30대가 되면서 벌초를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며 왜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여야 할까, 이런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대부분 아재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밥 먹을 때마다 어색하지만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래도 매년 이렇게 봉께 을~매나 좋노?? 소식도 듣고 벌초도 하고 그쟈?? 매년 빠지지 말고 나온네이~" 

     

     

    변화의 시작

    그러나 해가 갈수록 변화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르신들도 이제는 우리가 마지막 벌초세대라는 것을 실감하셨는지 예전에는 들을 수 없었고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제안들을 속속 꺼내곤 하신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하루만 고생하면 1년 동안은 평온하게 잊어버리고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으니...

     

    이제 또 벌초의 시즌이 왔다. 이번 행사에서 달라질 거라 예상되는 건,

     

    점심과 참을 하는 여성분들이 작년보다 더 적을 거라는 것과 일꾼들이 더 줄어들 거라는 것, 예초기나 낫보다는 깔꾸리(?)만 들고 오는 인원들이 많을 거라는 것.

     

    예초기가 보급화되면서 일꾼들의 머릿수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식사가 도시락으로 대체됨에 따라 아궁이에 불 피울 일이 없을 거라는 것.

     

    예전에는 불 때는 연기에 숨쉬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예초기 매연냄새에 머리가 지끈할 정도다.

     

    각오

    그것뿐이랴, 산소 주변에 있을 말벌들과 살인진드기들, 예초기 날에 튀게 될 파편들로부터 간신히 몸을 보호하며 이번에도 조심스레 임해보려고 한다.

     

    과연 다 뒤집어엎고 벌초를 안 하게 되는 날이 공식적으로 언제쯤 될까 기대하며 그저 벌초 가기 싫어 이것저것 적어본다.

     

    (흙에서 왔으면 그저 흙으로 가야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되거늘.. 이것을 왜 이쁘게 다듬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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